[JBC시선]'하나회'로 12.12 쿠데타 엮기와 최순실 미끼로 박근혜 아웃, 그 역사적 결합체
[JBC시선]'하나회'로 12.12 쿠데타 엮기와 최순실 미끼로 박근혜 아웃, 그 역사적 결합체
  • JBC까
  • 승인 2023.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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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서울의 봄 포스터.
영화 서울의 봄 포스터.

18일 현재 영화 서울의 봄관객수가 849만명 돌파했으니 이번 주 1,000만 명을 넘어설 것 같다. 이 영화에 대한 관람객 평점은 9.59점이다. 대한민국 인구수가 5,171만 명이니, 국민 다섯 명 중 한 사람이 이 영화를 본 셈이다.

197912.12 사태 9시간을 그린 이 영화는 보는 이의 관점에서 다를 수 있지만 완전 왜곡 날조다. 12.12으로 규정 한 후 이 영화를 전개시켰다. 김영삼 정권 역사바로세우기에서 12.12를 쿠데타로 규정했다. 따라서 이 영화가 12.12를 쿠데타로 규정한 후 영화를 출발시켰다. 그러나 역사적 배경으로 전개했다면 12.12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반영 재해석 해야했다. ‘영화는 영화로 보아야 한다지만 사실상 100% 왜곡 날조 전개시킨 것은 후세들에게 날조된 역사왜곡을 주입시켜 여간 충격적이지 않다. 

이 영화는 전두환 신군부를 악으로 규정했고, 오히려 군사반란을 일으켰던 장태완 전 수도경비사령관(영화 이태신 역)과 정병주 특전사령관(영화 공수혁 역)을 선으로 묘사했다. 이 영화는 1,000만 명이 볼 터이고, 평점 9.5점은 국민의 95%가 이를 그대로 믿고 받아들였음을 의미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 영화와 촛불집회다. 201611월부터 본격 일기 시작한 박근혜 퇴진 촛불집회. 당시 연말 여론조사는 국민 95%가 박근혜 대통령 탄핵과 퇴진 하야를 촉구했다. 이 같은 여론조사에 부채질을 더한 것이 촛불집회였다. 이 촛불집회가 박 대통령 탄핵과 구속시키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이어 그들이 지지했던 문재인 종북정권이 들어선 것이다.

다시 12.12 사태로 돌아오자. 12.12 사태는 아주 간단하다. 박정희 대통령 시해공모자로 의심받았던 정승화 육군참모총장 겸 계엄사령관을 연행하는 과정에서 생긴 사고였다. 정승화는 10.26 시해 사건 궁정동 50m 그 현장에 있었다. 당시 합동수사본부가 정승화 수사는 당연한 것이었다. 전두환 합수부가 12일 그날 저녁 정승화를 연행했고, 이에 반발한 장태완과 정병주가 국군통수권자에게 보고도 없이 군을 동원 합수부를 사살하고 깔아뭉개려 했다. 이것이 명백한 반란이지, 어떻게 정승화를 연행한 이들이 반란이란 말인가.

2016년 말 열린 박근혜 퇴진 촛불집회.
2016년 말 열린 박근혜 퇴진 촛불집회.

촛불이다. 촛불사태는 아주 간단하다. 촛불과 탄핵은 인민주권의 가면을 쓴 전체주의적 전복혁명의 수단이었다. 그들은 촛불은 국민의 명령이다라는 전체주의적 민중주권론을 내세워 다수 국민과 국회의원, 언론과 사법기관을 겁박하여 결국 헌재의 대통령 파면결정을 이끌어냈다. 탄핵사태는 단순히 박근혜 개인의 파면이 아니라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 헌정과 법치주의 탄핵이다. 촛불에 오도된 국민주권론은 대한민국을 다원적 자유민주주의 열차에서 전체주의적 인민민주주의 열차로 갈아 타게 하는 악마의 티테일이었다.

저들은 탄핵으로 인한 대통령의 리더십 공백을 틈타 사회주의가 답이다’ ‘북한이 우리의 삶이 될 혁명정권을 세우자고 체제전복 획책, 선동에 앞장섰다. 최서원은 미끼였다. 탄핵사태는 최순실 게이트를 광적으로 부풀리고 의도적으로 조작한 탄핵 선동 세력에 의해 추진되었다.

촛불이 최순실을 미끼로 활용했다면 12.12를 반란으로 몰았던 이들은 하나회를 거대한 미끼가 이용했다. 시대적 배경과 미끼 타깃은 달라도 좌익들의 전략 선동술이 그대로 녹여져 있다.

하나회는 육군사관학교 내 친목 동아리였다. 여타 대학 단과대학에 만들어진 동아리처럼 하나회도 마찬가지다. 언론과 좌익들은 하나회 신군부가 12.12 사태를 주도했다고 선동했다. 이들은 박근혜 국정은 최순실이 대리했다고 떠들었다. 그 예를 최순실의 잦은 청와대 출입, 연설문 수정, 인사개입, 국정보고 등을 했다며 광적으로 부풀렸다.

언론과 좌파들은 전두환 전 대통령이 12.12 사태를 일으킨 후 그 다음날 찍은 단체사진을 두고 전두환이 하나회를 동원 일으킨 명백한 반란이라고 하는데 이 사진은 12.12 사태를 안정시킨 것에 대한 단체 사진에 불과하고 여기에 하나회는 전두환 노태우 등 네 사람에 불과했다.
언론과 좌파들은 전두환 전 대통령이 12.12 사태를 일으킨 후 그 다음날 찍은 단체사진을 두고 전두환이 하나회를 동원 일으킨 명백한 반란이라고 하는데 이 사진은 12.12 사태를 안정시킨 것에 대한 단체 사진에 불과하고 여기에 하나회는 전두환 노태우 등 네 사람에 불과했다.

하나회가 12.12 반란을 주도했다며 당시 30경비단에 모인 자들이 하나회 멤버였고, 그 단적인 증거로 13일 찍은 사진이다. 이것은 12.12 쿠데타 자축사진이라는 것이다. 당시 이 사진에 찍힌 하나회는 네 사람이다. 네 사람이 합심해서 쿠데타를 일으켰단 말인가. 이는 최순실 한 사람이 박 정부의 국정농단을 했다는 말인데 이것이 가당찮은 말인가.

12.12가 쿠데타가 되고, 촛불이 민주화를 위한 혁명으로 승화된 것은 정치인과 언론의 역할이 컸다. 정치인과 언론은 이를 대의민주주의로 칭송했다. 이들의 기준으로 볼 때 태극기를 들었던 세력들은 반란과 반동세력이었다. 그래서 이들은 태극기를 들고 항쟁을 펼쳤던 세력들을 수구 극우세력, 이승만과 박정희 틀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반공세력이라는 덫칠을 더했다.

그러나 국민은 처음 이들의 선동에 현혹당했거나 넘어갔지만 이것이 얼마가지 못했다. 문재인 좌파정권의 폭정과 야만이 국민을 깨어나게 했다. 비로서 촛불과 탄핵이 대한민국 체제와 권력 찬탈이었다는 것에 공감하고 있다.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전직 대통령.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전직 대통령.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95년 역사바로세우기 특별법을 통해 12.12를 쿠데타로 규정한 후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과 당시 가담했던 모든 이들을 법정에 세운 후 처벌 구속시켰다. IMF 환란을 불러일으킨 김영삼은 박정희 전두환 정권이 성공시킨 대한민국 경제를 망치고 국민을 바닥으로 내던진 장본인이었다. 그런데 이런 김영삼의 역사적 반란은 정의로움으로 포장되었고, 국민 누구도 이에 대한 책임을 물으려 하지 않았다. 태극기 항쟁처럼 12.12를 바로잡고자하는 국민의 항쟁과 저항도 없었다.

12.12 다음 해 터진 5.18 광주사태와 그 후 전두환이 대통령(80827)에 취임하면서다. 이것은 12.12가 전두환이 대통령 되기 위해 하나회 신군부와 일으켰던 반란이었다는 명백한 ··논리를 낳게했다. 여기에 을 보탠 이들이 김대중·김영삼·노무현 좌파 전직 대통령들과 정치인, 학계, 종교계, 언론계, 시민단체 등 총망라였다.

이들은 잘못된 민중사관 분단사관 김일성사관, 통일사관이 더해지면서 대한민국의 역사는 좌익역사관으로 탈바꿈했고, 12.12는 이 속에 파묻힐 수밖에 없었다.

하기사 우파 지지를 받았던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도 12.12에 대해 말을 못하고 이들의 집단역사 왜곡에 동조했고, 박근혜는 20136월 전두환 추징법을 만들어 전두환 일가 재산을 모조리 빼앗고 정치적 탄압을 자행했다. 당시 전두환 전 대통령이 없었다면 10.26 시해사건은 미궁속으로 빠져들었고, 하마터면 김재규가 대통령, 그 다음 정승화 대통령으로 이어질 뻔한 아찔한 역사가 재현될 수도 있었다.

금융시장에서 악화가 양화를 구축시킨다는 말이 있다. 영화 서울의 봄이 현대사를 날조 왜곡 했지만 언젠가 이 영화가 한편으로 양화를 즉, 국민들에게 진실을 알릴 수 있는 구축판을 형성시킬 가능성도 없지 않다.

2016년 당시 탄핵과 촛불의 선동에 넘어가지 않았던 5% 국민이 국민을 깨어나게 했듯이 5% 국민은 12.12의 진실을 완전히 꿰뚫고 있다.

정말 정의로운 나라는 어떻게 되어야 하는가. 박정희 시해 공모자 정승화는 명예가 회복되어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되어 있다. 202111월 말 작고한 전두환 전 대통령 유골은 지금도 연희동 자택에 있다. 이 준엄한 물음에 명확한 답을 해야 한다.

백담사 유배중일 때 전두환 전 대통령.
백담사 유배중일 때 전두환 전 대통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