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BC 시선]국민탄핵의 길로 들어서는 박근혜
[JBC 시선]국민탄핵의 길로 들어서는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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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4.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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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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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전 대통령(이하 박근혜)에게 찍히면 모두가 아웃된다는 말은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한때 친박 좌장이었던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가 그랬고, 박근혜 비서실장을 역임했던 유승민 전 의원도 아웃된 케이스다.

박근혜로부터 이들이 아웃 된 것은 박근혜가 추진 중이었던 각종 정책에 반기를 들면서다. 민주국가에서 정치적 ’()’()’()’이라는 변증법 관계를 거쳐서 비로소 합에 도달하지만 박근혜만은 이것을 용납하지 않은 것 같다.

이와는 다르지만 박근혜는 20대 때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과의 관계도 소원해 질 뻔했다. 최태민 목사 관계 때문이었다.

1977년 중앙정보부 수사자료엔 형식상 모든 업무는 박근혜가 관장하였으나 실질적으로 최태민이 전권을 위임받아 행정부, 정계, 경제계, 언론계 등 각 분야에 영향력을 행사라고 기록되어 있다.

박정희는 최초엔 최태민을 탐탁지 않게 여겼기 때문에 최태민을 몰아내고자 했었다. 박근혜가 눈물을 흘리며 끝까지 최태민을 두둔하였고,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결국 박정희는 최태민을 내버려두었다. 덕분에 최태민은 사망할 때까지 박근혜의 옆에 자리하였다.

197910.26 박정희 시해사건을 일으켰던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은 19803월 항소이유 보충서에서 최태민을 언급한다. 김재규는 10·26 시해동기의 보충설명서에서 구국여성봉사단이라는 단체는 총재에 최태민, 명예총재에 박근혜양 이었는 바, 이 단체가 얼마나 많은 부정을 저질러왔고 따라서 국민, 특히 여성단체들의 원성이 되어왔는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아니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큰영애가 관여하고 있다는 한 가지 이유 때문에 아무도 문제 삼은 사람이 없었고 심지어 민정수석 박승규 비서관조차도 말도 못 꺼내고 중정부장인 본인에게 호소할 정도였습니다. 본인은 백광현 당시 안전국장을 시켜 상세한 조사를 시킨 뒤 그 결과를 대통령에게 보고하였던 것이나 박 대통령은 근혜양의 말과 다른 이 보고를 믿지 않고 직접 친국까지 시행하였고, 그 결과 최태민의 부정행위를 정확하게 파악하였으면서도 근혜양을 그 단체에서 손떼게 하기는커녕 오히려 근혜양을 총재로 하여, 최태민을 명예총재로 올려 놓은 일이 있었습니다라고 썼다.

박정희 시절 박근혜와 최태민의 관계 언급은 '금기어'였다. 박근혜는 자신과 최태민 관계를 언급했거나 보고서를 작성한 자들은 은밀하게 찾아내 모조리 좌천시켰던 것으로 전해진다.

김무성과 유승민은 정책적 반기로 아웃됐다면 정보라인 종사자와 청와대 인사는 최태민과의 관계를 보고했다는 이유만으로 좌천당했다. 그래서 박근혜에게 한번 찍히면 영원히 돌이킬 수 없는 관계가 된다는 말이 회자 됐고, 박근혜를 통해 정치권력을 잡은 자들은 이를 알고 있었기에 오직 듣기 좋은 말만 선별해서 박근혜에게 속삭였다.

박근혜는 여동생 박근령과 아웃이다. 박근령은 정치와 정보에도 엮이지 않았다. 피붙이다. 그런데도 박근령을 매몰차게 버렸다. 불화의 시작은 육영재단이었지만 그 이면에는 박근령씨가 언니와 최태민과의 부적절한 관계를 수군거렸기 때문이다. 육영재단 운영권을 둘러싼 갈등에서도 이것이 표면화됐다. 199011월 박근혜는 박근령에게 육영재단 이사장직을 넘기고 칩거에 들어간 후부터 근량씨와 멀어졌다.

박근혜는 청와대 입성과 탄핵당하고 구속된 이후에도 박근령을 찾지 않았다. 202112월 사면복권 된 후 그 다음 해 3월 말 대구달성 사저에 입주했지만 근령씨는 부르지 않았다.

박근혜가 오는 25일 대구에서 자신의 회고록을 담은 책을 발간하면서 북 콘서트를 개최한다. 박근혜 측은 주요인사 500명을 대상으로 초청 여부를 확인 한 후 300명에게 초청장을 보냈다고 한다. 이중 근령 씨를 제외시켰다.

박근혜 측은 우리공화당 조원진 대표에게도 초청장을 보내지 않았다. 박근혜는 지난 9월 말 중앙일보 회고록 연재 전 인터뷰를 통해 우리공화당 측에 자신의 사진과 이름을 내려줄 것은 요구했다. 또 조 대표를 겨냥 자기정치를 했다고 힐난했다. 이것은 박근혜가 조 대표와 우리공화당을 바라보는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는 지적이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수군거린다. 아예 대놓고 박근혜를 질타한다. “어떻게 자신을 위해 모든 것을 내던진 사람에게 위로는 못해 줄 지언정 이래도 되는 것인가라며 원성을 쏟아내고 있다.

박근혜가 정상이라면 조원진을 만난 후 감사의 인사를 전하는 것이 도리다. 국민들에게도 마찬가지다. 박근혜가 조 대표와 우리공화당에 차갑게 대한 것은 20223월 말 달성 사주에 입주할 때다.

당시 조 대표와 우리공화당은 그곳에서 입주환영 집회까지 열었다. 달성사저 주변에는 입주 축하화환이 즐비했었다. 박근혜는 이를 보고도 까고 사저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조 대표와 우리공화당이 지난해 2월 초 박근혜 72번 째 생일과 사저 입주일에 이를 해주지 않았다면 사저 주변은 텅텅비었을 것이다.

박근혜는 회고록에서 측근들을 향한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자신의 구속은 측근들의 배신에서 원인을 찾았고,  이것은 박근혜가 사주 입주하기 전 서울삼성병원에서 그대로 드러냈다.

박근혜는 당시 자신의 퇴원을 축하해주기 위해 서 있던 청와대 참모들과 장 장차관, 정치인들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고 돌아서 갔다.

박근혜는 회고록을 통해 황교안 전 총리에게도 서운함을 토로했다. 자신이 수감 시절 황 전 총리가 책상 의지 반입을 해주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이후부터 박근혜는 다른 측근들은 은밀히 찾았지만 대통령 권한 대행을 맡으면서 시국을 이끌었던 황 전 총리는 찾지도 않았다.

황 전 총리는 지난 해 자신의 아내와 함께 달성 사저를 찾아서 박근혜 사저 50m 곁에서 생일상을 차려줬지만 외면했다.

그날 허원제 전 청와대 정무수석, 김재수 전 농림부 장관, 서상기 전 의원을 초청해 식사했다. 탄핵에 대해 입장표명조차 없었던 한광옥 전 비서실장과도 만나 청와대 시절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무엇이 문제이고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혹자들은 박근혜가 1737일 간 수감생활을 하면서 정무적 판단의 감이 떨어졌다 하고, 또 유영하가 박근혜의 눈과 귀를 가렸기 때문이다는 데서 원인을 찾는다. 물론 이것은 아닐 것이다부인 못하지만 실질적인 이 원인은 박근혜의 본성에서 찾아야 할 듯 하다.

박근혜는 어릴적부터 측근으로부터 오직 예설소리만 듣고 자랐다. “에 익숙치 않다는 해석이다. 박근혜에게 는 반기요, 고로 아웃대상인 것이다.

박근혜는 한 사람에게 빠지면 헤어나지 못하는 성격의 소유자 인 것 같다. 70년대 최태민90년대 이후 최순실(본명 최서원)탄핵과 구속 이후 유영하 변호사다.

임금의 귀는 오직 자기 옆에 있는 사람의 말만 듣고(君耳唯聞堂上言), 임금의 눈은 문 앞의 일은 보지 못 하누나(君眼不見門前事). 탐학한 관리들이 거리낌 없이 백성을 해치고(貪吏害民無所忌), 간신들이 임금을 가리고는 두려워하는 바가 없구나(奸臣蔽君無所畏). 그대 보지 못 했소? 여왕과 호해의 말년을(君不見王胡亥之末年), 여러 신하들은 유리했지만 임금은 유리한 게 없었다네(群臣有利君無利).”

당나라 시인 백거이(白居易)채시관(采詩官)’이라는 시의 일부다. 3000년 전 주()나라 때는 채시관 관직을 두었다. 채시관은 전국 각 지역을 다니면서 백성들의 여론 불평불만 등을 듣는 자리다.

주나라의 려왕(厲王), 측근 아첨꾼들의 말만 듣고, 백성들에게 계속 세금을 과도하게 거두고 형벌을 잔인하게 하다가, 결국 백성들의 반란으로 왕위에서 쫓겨났다. 14년 동안 숨어다니다가 객사하였다.

역사가 되풀이된다. 3000년 전 중국에서 있었던 일과 지금 박근혜를 통해 겪고 있는 것은 말로만 설명하기에는 너무 유사한 점이 많다.

대통령은 모든 것을 다 알 수 없다. 그래서 전문가들을 장관이나 청와대 참모 자리에 두고 보좌를 받는 것이다. 박근혜 탄핵이 최서원에서 비롯됐다는 것은 오직 최서원만 의존한 화근이었다.

지금 박근혜의 유 변호사 의존도는 최서원보다 더하면 더하지 덜하지 않는 것 같다. 박근혜는 대구 사저로 돌아온 지 보름만인 202248모두가 떠났지만 내 곁을 지킨 오직 한 사람” “나의 못다한 정치적 꿈을 실현시켜 줄 한 사람유영하를 꼽으면서 당시 대구시장에 출마한 유영하 공개지지와 후원회장을 자처했다. 유 변호사는 박근혜 수감 내내 박근혜 손발과 '박근혜 입과 귀'였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2월 말 박근혜를 용산 관사로 초대 만찬을 했었다. 윤 대통령은 이날 만찬에 김건희 여사를 대동했고, 박근혜는 유 변호사와 함께 만찬에 참석했다. 윤 대통령은 부부동반, 박근혜는 유영하 동반이었다. 흔히들 일에서부터 열까지 유영하와 함께다. 오래 전부터 두 사람의 관계가 수상하다는 소문도 나돈다.

유 변호사는 22일 총선 출마 기자회견을 예고한 상태다. 박근혜의 5북 콘서트가 대구 달서갑 출마가 유력한 유 변호사 지원이라는 해석이 그래서 나온다. 국민의힘은 오는 29일부터 23일까지 총선 출마 후보자 접수를 받는다. 박근혜 북 콘서트가 이틀 뒤 열리는 것은 유영하 선거 발대식 지원 분석을 뒷받침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박근혜 북 콘서트에 약 500명이 초대받았지만 초청대상이 누구인지 확인되지 않고 있다. 박근령도, 조원진도, 황교안도, 친박도, 2016년 11월 말 가장 먼저 태극기 집회에 참석, 박근혜 탄핵의 실체를 폭로한 허평환 전 기무사령관도 초청하지 않았다면 누구를 초대했다는 것인가.

이것은 특정인을 초대하고 안하고 문제가 아닌, 자신을 위해 목숨걸고 싸워온 자들을 '개무시'한 것이다. 또한 순수 애국운동을 박근혜가 스스로 짓밟은 꼴이다. 앞으로 박근혜 탄핵보다 더한 사달이 나도 국민들이 무관심으로 돌아설 것이고 이것은 한국의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무너뜨릴 수 있다. 이탈리아 공산당 창시자 그람시는 이 무관심을 경계했고, 국민 무관심이 공산주의를 이끌어 갈 수 있는 최대 무기다. 

유 변호사는 자신이 박근혜 눈과 귀를 독점하고 있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 펄쩍 뛴다. 박근혜도 이것은 유 변호사를 모함하는 것이다고 했다.

70년 말 박근혜는 자신과 최태민 관계가 부각되자 모함이다” “억울하다고 항변했다. 이것은 결국 김재규가 박정희를 시해한 한 작은 원인이었다.

입법과 사법부가 박근혜를 탄핵시켰다. 최순실의 국정농단이 가장 큰 그 이유다. 박근혜는 회고록을 통해 그런 사실을 몰랐다”, “최순실과 권력을 나누지 않았다고 항변했다. 박근혜는 최태민·최서원·유영하 논란에 밝힌 공통점은 그런 사실이 없다” “모함이다” “억울하다였다.

박근혜의 정치적 몰락은 최태민과 최서원이었다. 자신은 "억울하다" 항변했지만 세상은 박근혜 말을 곧이 곧대로 믿지 않는다. 박근혜가 유영하를 통해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입법 사법에 의한 박근혜 탄핵은 거짓과 조작 선동 불법이다. 이것은 훗날 진실이 밝혀지면 바로잡힌다. 그러나 자신을 지지해준 국민으로부터 버림받으면 영원히 바로잡히지 않는다. 이것이 그 무서운 국민 탄핵이다. 박근혜가 그 강을 건너는 중이다.

박근혜 회고록 출간을 축하하며, 행사가 잘 치러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