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BC시선]박정희를 세 번 살린 전두환과 전두환을 짓밟은 박근혜 이야기
[JBC시선]박정희를 세 번 살린 전두환과 전두환을 짓밟은 박근혜 이야기
  • JBC까
  • 승인 2024.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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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장교시절 전두환 전 대통령이 박정희 육영수 여사와 함께 찍은 기념사진.
젊은 장교시절 전두환 전 대통령이 박정희 육영수 여사와 함께 찍은 기념사진.

역사에는 만약이 없다지만 전두환 전 대통령이 없었다면 오늘날 박정희 전 대통령이 국민으로부터 추앙받은 대통령이 됐을까.

그리고 전 전 대통령이 없었다면 19791026일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자행한 박 전 대통령 시해 사건 전모가 밝혀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19615.16 군사혁명을 일으켰던 박정희 전 대통령이 혁명의 당위성을 인정받았던 것은 당시 육사생들의 지지였다. 대통령은육사생도장교단의혁명지지시가행진주도하는 등 박 전 대통령의 신임을 얻었다.

전 전 대통령은 박정희 전 대통령 목숨까지 지켜주었다. 1968121일 북한 민족보위성 정찰국 소속인 124군부대 무장 게릴라 31명이 청와대를 기습하기 위해 서울에 침투했다.

한국군 복장을 한 이들은 수류탄 및 기관단총으로 무장하고 휴전선을 넘어 야간을 이용하여 수도권까지 잠입하는 데 성공했다. ·경은 즉시 비상경계태세를 확립하고 현장으로 출동하여 29명을 사살하고 1명을 생포하였다. 나머지 1명은 북한으로 도주했다전두환은 이들을 소탕할 수 있었던 혁혁한 공을 세웠다.

당시 청와대 외곽 경비를 책임졌던 수도경비사령부 30대대장 전두환이 없었다면 청와대가 뚫렸을 것이고, 아마도 박 대통령과 주요 인사가 암살 당했을지도 모른다. 전두환은 19678월 수도경비사령부 30대대장에 임명된 직후 청와대 주변 산세를 이용해서 얼마든지 적들이 침입할 수 있다고 보았다. 전 전 대통령은 경비는 1%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대비를 하는 것이라 했다.

전 대통령은 당시 박종규 경호실장에게 만에 하나 무장공비의 청와대 출몰 등에 대비, 조명탄과 박격포를 쏘울 수 있도록 허가해달라고 요청했다. 당시 경호실과 청와대 인사들은 청와대는 경비가 철저해 개미새끼 한 마리도 들어 올 수 없다봤지만 전 전 대통령은 시각은 달랐다. 결국 전 전 대통령은 뜻을 관철시켰다.

그 후 2개월 뒤 김신조 일당이 청와대 기습공격을 강행했고, 이들은 새검정 등 청와대 인근서 조명탄이 펑펑 터지자 혼비백산 도망쳤고, 그 과정에서 한 명은 북으로 도망쳤고, 김신조가 체포됐고. 나머지는 모두 사살되었다.

만약 전두환의 항시 대치체제를 통한 박격포 및 조명탄이 없었다면 무장공비들이 청와대까지 침투할 수 있었던 상황이었다. 그 조명탄은 밤새도록 새검정과 북악산 일대를 대낮같이 밝히며 무장공비를 대거 소탕하는 데 일조했다. 그 후 박 전 대통령은 전 전 대통령을 크게 신임했다는 후문이다.

박정희는 197935일 국군 보안사령부 사령관에 전두환 당시 1사단장을 앉혔다. 당시는 정기 군인사 기간도 아니었다. 전 전 대통령의 보안사령관 임명은 당시 군내부에서도 가장 파격적 인사였다. 보안사령관은 '쓰리스타'가 가는 자리였지만 전두환은 '투스타' 신분이었다.

일각에선 박 전 대통령이 전두환을 보안사령관에 앉힌 것은 자신의 암살을 예언했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김재규는 그해 1026일 저녁 궁정동 만찬에서 박정희를 시해했다. 그 다음 날 계엄령이 선포됐고, 계엄령령에 따라 보안사령관 전두환이 박정희 시해사건 전모를 밝히는 합동수사본부장에 임명됐다.

전두환은 온갖 협박과 저항 암살 위험을 무릅쓰고 김재규의 박정희 암살 전모를 파헤쳤고, 12.12를 통해 당시 계엄사령관 정승화 연행을 통해 그가 김재규와 한패였음을 밝혀냈다.

당시 전 전 대통령이 아니었다면 결코 박정희 시해사건 전모가 밝혀지지 않았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김재규 혹은 정승화, 김영삼, 김대중이 대통령이 됐을지 예측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됐을 경우 김일성의 남침 시도가 불을 보듯 뻔했다.

대통령 재임기간 전 전 대통령은 온갖 공격을 받아오면서 정치적 논란과 갈등을 겪었지만 군인 시절 전 전 대통령은 불의를 보면 참지못하고 무엇보다 용맹스럽고 강직한 군인이었다는 평가다. 그래서 그를 한편으론 구국의 대통령이라고도 한다.

이처럼 전 전 대통령은 박정희를 지켜냈고, 한국 현대사의 물줄기를 바꾸는 데 큰 기여했다는 평가다. 그런 전 대통령에게 무엇보다 고마워 해야 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살아생전 전 대통령에게 감사 인사조차 하지 않았다. 오히려 전 전 대통령 죽이기에 앞장섰고, 아주 매몰차게 전 전 대통령을 대했다.

박 전 대통령은 대통령 재임 기간 법조계의 위헌요소가 있다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전두환 재산 추징법을 만들어 전 전 대통령 일가 재산을 탈탈 털었다. 전두환 추징법은 전 전 대통령 친인척 재산까지 몰수 가능했다. 이 법으로 전두환 전 대통령은 자신이 길렀던 진돗개마저 빼앗겼다. 훗날 이순자 여사는 박정희 대통령 따님이 우리에게 이렇게 할 수는 없다고 통탄했다. 그래서 이 여사는 남편과 자신이 죽어야만 이 굴레서 벗어날 것으로 보고 그 후 병원조차 찾지 않았다. 이 여사는 12년 만에 찾은 병원에서 유방암 진단을 받고 수술을 했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전 전 대통령을 사실상 전직 대통령으로도 인정조차 하지 않았다. 대통령 당선된 후 박정희 공격과 퇴진에 앞장섰고, 김재규의 박정희 암살 빌미를 제공했던 김대중·김영삼 전직 대통령에게는 깎듯한 예우로 대해주었다.

심지어 박근혜는 20048월 한나라당 대표 시절 김대중을 찾아가서 아버지로 인해 고통받고 피해입은 것에 대해 사과까지 했다. 아무리 표가 급하더라도 박근혜는 20129“5.16과 유신이 헌법가치를 훼손시켰다고 밝혀 파문을 낳았다. 이는 김영삼과 김대중 등 좌파들이 주장해온 5.16 쿠데라였다는 세력들 손을 들어준 셈이다.

박근혜가 전 전 대통령을 이처럼 모질게 대한 것은 전 대통령이 최태민 목사와의 관계를 단절시켰기 때문이라는 시각이다. 김종필 전 총리에 따르면 박근혜와 최태민은 영혼의 부부였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최태민이 박근혜를 업고 많은 물의를 일으켜 10·26 직후 전방 군부대에 격리 조치했다. 전 전 대통령은 또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12년 대권 도전을 앞두고 도움을 요청했지만, 박 전 대통령의 능력으로는 무리라고 판단해 거절했다. 박근혜가 이에 대한 앙심을 품고 있었을 것이란다. 그래서 정치권에선 박근혜를 두고, 한 번 찍히면 영원히 회복불능이라는 말이 나왔다.

박 전 대통령은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김재규를 찬양한 김대중은 극진히 모셨고, 아버지를 암살해서 10.26 전모를 밝혀낸 전 전 대통령은 철저히 짓밟아버렸다.

박근혜가 왜 전 전 대통령 죽이기에 앞장섰는지 등에 대해선 또다른 논란이 있지만 박 전 대통령은 분명 은혜원수되갚았다는 지적이다. 이는 박 전 대통령이 자신의 탄핵과 구속에 항거하면소 7년간 투쟁을 해온 애국 국민에게 감사의 인사말조차 하지 않은 것과 비슷한 상황으로 읽힌다. 박근혜는 자신을 지지하고 지켜온 국민을 짓밟아버렸고, 자신의 탄핵과 구속에 앞장섰던 사람의 손을 잡고 신권력에 조아렸다.

지난 202111월 별세한 전 전 대통령은 한 줌의 재로 돌아갔지만 아직도 그의 유골은 연희동 집 장식장에 머물러 있다. 늦었지만 박근혜는 연희동 전 전 대통령 사저를 찾아서 전 전 대통령 유골 앞에 감사와 함께 사죄해야 한다. 이것이 산 자가 죽은 자를 위해서 해야하는 인간의 처신이자 도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