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최후진술…윤석열 한동훈 수사 책임자 때렸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최후진술…윤석열 한동훈 수사 책임자 때렸다
  • JBC까
  • 승인 2024.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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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전 대법원장.
양승태 전 대법원장.

이른바 사법 농단사건으로 기소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47개 모든 혐의에 대해 지난 26일 서울중앙지법이 1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함께 기소된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도 무죄를 선고받았다. 기소된 지 411개월 만이다. 47개 혐의 중 핵심은 양승태 사법부가 숙원 사업인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청와대를 상대로 재판 개입·거래를 하고, 물의를 일으킨 법관 명단을 만들어 인사 불이익을 줬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이 혐의를 포함해 47개 혐의 전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양 전 대법원장은 이 사건이 한 편의 소설이라고 했는데 그 말 그대로 됐다.

양 전 대법원장은 작년 915일 서울중앙지법 형사35-1(재판장 이종민, 임정택, 민소영 부장판사)의 심리로 열린 결심공판 최후진술에서 특정 인물을 표적으로 무엇이든 옭아맬 거리를 찾아낸 먼지털이식 수사였다며 당시 윤석열 중앙지검장과 한동훈 차장이 지휘하였던 검찰 수사를 정면으로 비판했다.

이 사건은 2019211일 서울중앙지법에 접수돼 같은 해 325일 첫 공판준비기일을 시작으로 529일 정식 재판이 시작된 이후 총 277회에 걸쳐 공판기일이 열렸다. 기소 약 47개월 만에 1심 절차가 끝난 것이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최후진술 全文

오랜 기간 미로와 같은 이 사건의 심리를 세심히 이끌어 오신 재판부 판사님들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무엇보다 먼저, 저가 대법원장일 때의 일로 인해 이토록 큰 분란이 일어난 데 대하여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이로 인해 실망을 느끼신 모든 분들에게 깊이 사과드리고자 합니다. 저는 대법원장으로 취임하면서 국민과의 소통을 통한 사법신뢰의 확보를 지상의 과제로 하여 온 힘을 다해 왔으나 소용돌이치는 정치 격변 속에서 생각치도 못한 일로 모든 노력이 허공으로 달아나는 모습을 보면서 극심한 자괴감에 괴로워하기도 합니다.

이 재판이 시작된 지 벌써 4년 반이 흘렀고 수사가 개시된 때부터는 무려 5년이 지났습니다. 세월이 흐르고 상황이 변함에 따라 정치권력의 광풍이 사법부를 정신없이 휘몰아치던 이 사건 초기의 험악한 분위기는 점차 잊혀지고 폭풍 뒤의 난파선과 같이 망가진 잔해만이 표류하며 사건의 본질을 찾아보기 어렵게 합니다. 왜곡된 사실과 가짜뉴스로 인해 추락된 이미지는 일반인의 뇌리에 거의 고정관념같이 자리 잡고 지금까지도 온라인 등을 떠다니며 진실을 가리고 있습니다.

이 사건의 본질은 과연 무엇이겠습니까?

얼마 전 어떤 형사사건이 대법원에서 무죄로 확정되었을 때 그 사건을 기소한 검찰을 두고 한 언론이 사설에서 이렇게 논평했습니다.

당시의 집권 정당이 표를 얻고자 피고 기업에 대한 규제에 나서자 검찰이 부화뇌동했을 것이다. 검사는 누구나 범죄자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검찰은 제1,2심의 무죄 판결에 대하여 상고까지 함으로써 권력을 이용해 죄 없는 사람을 끝까지 괴롭혔다. 정치권과 검찰이 반성과 사과 없이 이대로 간다면 다른 분야에서도 이런 일이 또 다시 반복될 것이다.’

지금 이 사건도 그와 꼭 마찬가지입니다. 사법부에 대한 정치세력의 음험한 공격이 바로 이 사건의 배경이고 검찰이 수사라는 명목으로 그 첨병 역할을 한 것입니다. 권력으로 사법부를 공격함으로써 민주적 헌정질서를 위협한다는 점에서 심각성은 훨씬 더합니다.

당초 법원 내부에 물의가 일어나자 사법부는 2018. 5.까지 거의 1년 넘게 세 번이나 자체 조사를 벌였습니다. 그중 두 번은 저가 퇴임한 후에 이루어졌고 마지막 조사는 사법행정의 최고기관인 법원행정처장이 이끄는 강력한 팀에 의해 수행되었습니다. 그렇게 여러 번 심층적인 조사를 거쳤으나 결국 형사조치를 취할 만한 범죄혐의는 없다고 결론이 났음은 모두 잘 아는 사실입니다. 조사팀이 의도적으로 피고인들의 범죄를 감추었을 리가 없고 조사에 참여한 법관들의 법적 소양이 부족했던 것은 더더구나 아닐 것입니다. 사실이 그러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당시 집권하고 있던 정치세력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그들의 의도는 얼마 뒤인 그해 9월 법원의 날 기념식에 참석한 대통령의 축사에서 여실히 드러납니다. 그는 축사에서, 사법농단과 재판거래 의혹으로 인해 사법부의 신뢰가 뿌리째 흔들려 전례 없는 위기상태에 봉착했다고 강하게 비판하고 그 의혹은 반드시 규명되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실체도 불분명한 사법농단과 재판거래를 기정사실로 하고 이미 거친 사법부 자체조사결과는 외면한 채 수사를 더하여 이를 찾아내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이 사법부의 심장인 대법원의 중앙홀에 와서 대법원장과 대법관을 비롯한 많은 법원 가족들을 앞에 두고 축사의 내용으로 그런 말을 한 것입니다. 대통령이 법원의 날 행사에 참석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입니다. 이날 대통령이 전례 없이 이 기념식에 참석한 것은 바로 이 말을 하기 위한 것일 터이고, 이는 당시 집권 정치세력이 줄곧 갖고 있던 생각을 단적으로 나타낸 말임은 누구나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일찍이 전체주의의 위험을 경고한 조지 오웰은 그의 저서 ‘1984에서 권력의 속성을 이렇게 갈파했습니다.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한다. 현재를 지배하는 자가 과거를 지배한다.’

이 말은 당시 집권세력의 의도를 너무나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사법부의 미래를 장악하기 위하여 그 집권한 권력으로 사법부의 과거를 지배하러 나선 것입니다.

이에 부응하여 검찰은 사법부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에 나섰습니다. 직무 상 수시로 법원의 견제를 받을 수밖에 없는 검찰로서는 그 동안의 불만을 풀 절호의 기회였을 것입니다. 이 사건 수사에만 무려 7,80명에 이르는 엄청난 숫자의 검사가 동원되어 다른 부서에서는 검사 부족으로 업무가 지연된다는 말까지 떠돌 정도였습니다. 수사 범위는 끝도 없이 사면팔방으로 무한정 확대되어 제가 대법원장으로 취임한 때부터 퇴임한 때까지 전 재임 기간을 대상으로 원래의 이슈와 관련도 없는 법원의 구석구석까지 샅샅이 뒤졌습니다. 이것은 수사입니까? 수사가 아닙니다. 특정 인물을 표적으로 무엇이든 옭아 넣을 거리를 찾아내기 위한 먼지털이식 행태의 전형이며 불법적인 수사권 남용입니다. 자고새면 수사 상황이 중계방송 하듯이 보도되고 재판거래, 블랙리스트, 비자금 조성 등 들어보지도 못한 온갖 허황되고 왜곡된 가짜뉴스가 판을 치고 지면을 장식했습니다. 관련 인사들은 변명할 틈도 없이 수사 초기에 벌써 죄인이 다 되어 있었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검찰은 피고인들을 묶을 프레임을 짰습니다. 오늘 오전에 검사가 의견진술에서 말한 범죄사실이 바로 그 프레임입니다. 그 프레임 속에 모든 사실관계를 견강부회하여 억지로 꿰어 넣었습니다. 목소리 높여 비난했던 여러 재판거래가 모두 사실무근으로 드러나자 이른바 징용사건을 재판거래의 사례나 되는 듯이 슬쩍 각색하여 끼워 넣었습니다.

아무리 뒤져도 블랙리스트를 찾지 못하자 통상적인 인사자료를 가지고 블랙리스트인 듯 포장하여 인사권을 남용했다고 우깁니다. 참 우습기조차 합니다. 모든 대법관들과 더불어 신중에 신중을 거듭하느라 심리를 미처 끝내지도 못한 그 중차대한 징용사건으로 도대체 무슨 재판 거래를 한다는 말이며, 어느 조직이든 다 가지고 있는 인사자료가 어찌 블랙리스트가 될 수 있다는 말입니까? 매사가 다 이런 억지입니다. 이 사건의 수많은 조서에서 시도 때도 없이 흔하게 등장하는 문답이 하나 있습니다.

: 이 정도 내용이라면 대법원장에게 보고되지 않았을까요? : , 보고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반강제적인 추측진술이 바로 그것입니다. 어떻게 하든 대법원장을 엮어 넣으려는 검사의 굳은 의지가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억지와 추측을 바탕으로 20만 장에 이르는 수사기록과 300쪽이 넘는 공소장이 만들어졌습니다. 수사권 남용의 열매이자 공소장일본주의 위반 사례의 교육 교재로 삼을 만한 것이 바로 그 공소장입니다. 도무지 법률가의 작품 같지가 않습니다. 허구로 가득 찬 이 공소장을 두고 저는 4년반 전 이 재판이 시작될 때 모두진술에서 검찰은 공소장으로 한 편의 소설을 썼다. 그러나 용을 그리려다 뱀도 그리지 못했다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공소 제기된 내용에 대하여 할 말은 태산 같으나 모두진술에서 한 그 지적을 원용하는 것으로 대신하고자 합니다.

저는 법관의 직을 천직으로 삼고 42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한 번도 다른 데 눈을 돌림이 없이 거의 전 인생을 사법부에 바쳤습니다. 사실 대법원장이라는 직책은 내가 원한 것이 아니었고, 행여 지명이 될까봐 일부러 국외 출국까지 하며 이를 피하고자 했으나 결국 소명을 거절하지 못하고 맡게 된 것입니다. 저는 진정한 사법부의 독립은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있어야만 이룰 수 있고 사법부에 대한 그 신뢰는 법관에 대한 믿음과 존경 없이는 획득할 수 없는 것이라고 굳게 믿습니다. 그리고 법관에 대한 믿음과 존경은 직무수행에 있어서는 물론 일상의 처신에서도 항상 품위를 잃지 않고 언제든지 국민을 위해 희생을 마다 않는 자세를 보일 때에 비로소 얻을 수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저는 법관에게는 모든 면에서 엄격한 잣대가 적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언제나 자신을 성찰하며 살아 왔습니다. 그런데 그와 같이 살아온 생애의 막바지에 참으로 기가 막힐 일로 신병구속까지 겪어가며 치욕 속에 이렇게 법정에 서 있는 자신을 바라봅니다. 고명한 승려이자 시인인 무산스님의 아지랑이라는 시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끝내 삶도 죽음도 내 던져야 할 이 절벽에 / 마냥 어지러이 떠다니는 아지랑이들 / 우습다 / 내 평생 붙잡고 살아온 것이 아지랑이더란 말이냐

지금의 내 마음을 이보다 더 적절히 표현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증거관계와 법리를 따지고 변론하는 것 자체가 참 부질없고 구차스러운 느낌마저 듭니다.

그러나 이 사건은 내가 평생을 바친 우리 법원의 미래와 사법부 독립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사건입니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정치세력에 의한 사법부 공격은 한 두 번이 아니었지만 이처럼 노골적이고 대규모적이며 끔찍한 공격은 일찍이 없었습니다. 보십시오. 얼마나 많은 무고한 법관들이 검찰에 마구 불려가 치욕과 수모를 당했습니까?

얼마나 많은 법관들이 상처를 입고 법원을 떠나야 했습니까? 고스란히 검찰로 넘어간 법원의 내밀한 자료, 특히 법관의 신상 자료가 얼마나 많으며 무엇보다, 왜곡과 가짜뉴스로 인해 사법신뢰는 그 얼마나 훼손되었습니까? 이렇게 사법부를 초토화해 놓고 그 모두를 법관의 독립을 위한 것이라고 논고하고 있으니 참 어안이 벙벙합니다. 참으로 비통하고 참담한 일입니다. 그 길고 암울한 터널을 지나 이제 이 분란을 종결짓는 판결만이 남았습니다. 만일 여기서 사법부가 이 공격을 막아내지 못한다면 법원은 정치권력에 힘없이 쓰러져 사법부 독립은 한갓 헛구호일 뿐 앞으로 집권세력이 바뀔 때마다 이러한 사태가 반복될 것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세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미국 연방대법원에 흑인의 인권에 관하여 대척점에 서는 2개의 판결이 있습니다. 하나는 흑인 노예에게는 미국 시민으로서의 헌법상 권리를 인정할 수 없다고 판시한 이른바 드레드 스콧 사건이고 또 하나는 노예선에 잡혀 운송되던 흑인들은 모두 자유인이므로 누구의 소유도 될 수 없다고 판시한 아미스타드 호 사건입니다. 전자는 노예제도 지지세력에 영합한 사법사상 가장 부끄러운 판결로 기억되는 반면 후자는 엄청난 정치적 압력을 물리치고 미국을 위대하게 만든 기념비적인 판결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이 사건의 판결도 어떤 결론이든 우리나라 사법사에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 비록 내가 지금까지 5년 가까이 수사와 재판을 받으며 갖은 수모와 불명예를 겪고 삶의 보람까지 무너지는 듯 하지만 이 사건이 아미스타드 호 사건처럼 정치세력과 검찰 권력의 부당한 공격으로부터 사법부를 지켜낸 기념비적인 재판으로 기억된다면 저는 그 고난을 오히려 큰 영광으로 여기며 기뻐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여기 옆에 계신 두 분 공동피고인들에 대해서 간략하게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이 두 분은 인품에 있어서나 법적 소양에 있어서 참으로 뛰어나고 주위 사람들로부터 크게 존경받는 분들입니다. 이분들은 원래 법원행정처장의 직에 뜻이 없었으나 제가 삼고초려하여 처장으로 모신 것인데 주어진 직무를 다 하다가 뜻밖에 이런 고초를 당하고 계십니다. 누차 말씀드린 바와 같이 우리는 모두 죄가 될 게 없습니다. 만일 우리에게 죄가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법적인 죄가 아니라 정치적인 굴레일 것입니다. 기어이 그런 정치적인 족쇄를 씌운다면 그런 죄는 대법원장인 저 혼자 벌을 받으면 족할 것입니다. 공동피고인 두 분에게까지 그런 벌을 내리지 않도록 진심으로 청원하고자 합니다.

경위야 어쨌든 저의 재임 기간 중의 일로 이런 사단이 벌어진 데 대하여 재삼 깊이 사과드립니다.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26일 무죄가 선고되자 방청객 일부는 손뼉을 치며 환호하기도 했다. 재판장도 검사, 변호사 등 소송관계인의 이름을 직접 호명하며 긴 시간 재판에 성실히 참여했다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선고 직후 취재진과 만나 "당연한 귀결"이라며 "이렇게 명쾌하게 판단해 주신 재판부에 경의를 표한다"고 환영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20119월 취임 후 임기 6년 동안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과 박·고 전 대법관 등에게 반헌법적 구상을 보고받고 승인하거나 직접 지시한 혐의로 20192월 구속기소됐다.

당시 수사는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과 한동훈 3차장검사가 담당했다. 대법원장을 직무 관련 범죄 혐의로 기소한 첫 사례인 만큼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