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으로 쓰러진 이왕표 내가 죽으면 ---
암으로 쓰러진 이왕표 내가 죽으면 ---
  • JBC까
  • 승인 2017.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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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맨 이동우에게 눈을 기증하겠다 

이왕표 선수가 쓰러졌다. 암으로. 그것도 아주 고약한 담도암가 투병중이다. 담도암은 췌장암과 함께 경과가 좋지 않은 암으로 알려져 있다. 담도암으로 진단 받은 환자 중 수술로 완치가 가능한 경우는 40~50%에 불과하다. 또 수술 시에도 광범위한 절제로 인한 후유증 때문에 고령인 경우 수술을 감당하지 못할 수 있다. 그가 담도암에 걸린 것이 믿기지 않는다.

병실에 누워 암과 사투 벌이고 있는 이왕표

그가 누구인가. 한국프로레슬링계의 상징적 존재 아닌가. 신장 192cm, 체중 125kg. 전 WWA, GWF 헤비급 챔피언. ‘박치기왕’ 김일 선수(1929-2006) 후계자가 아닌가.

그런 이 선수가 쓰러진 곳이 사각의 링이 아니다. 병원 침대다. 지난 14일 암수술을 받은 그는 이제 ‘암’과 한판 승부를 펼쳐야 한다. 병마와의 한판 승부를 알리는 종은 이미 쳐졌다.

이왕표 선수. 서울 현대아산병원 병실에서 숨가쁜 호흡을 내뱉으며 누워 있는 그를 지켜보니 인생사 세옹지마란 생각이 절로 든다. 현재 그는 ‘면회사절’이지만 지난주 그를 면회했다. 이 선수는 암수술 후유증으로 인해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이왕표가 야수 밥샵을 이긴 후 승리의 주먹을 쥐고 있다

그의 손을 잡고 할 수 있는 말이 “벌떡 일어나소”뿐이다. 그의 눈가에 이슬이 맺히기 시작했다. 이 선수도 자신이 왜 이런

암과 투병중인지에 대해 “이해안된다”며 스스로를 한탄해 하는 것 같았다.

그와의 추억은 참으로 많다. 그와의 인연은 김일 선생이 맺어줬다. 필자는 김일 선생 살아생전 그의 구술를 받아서 ‘굿바이 김일’ 자서전을 냈다. 김일 선생이 작고하기 전 까지 늘 그를 찾아뵙는 게 일상이었다.

이 선수는 그럴때마다 “이보슈~~정부장, 우리 오야봉 잘 모셔주슈~~”라고 부탁하곤 했다. 그리고 일주일이 멀다하고 스승 김일 선생 건강을 챙겼다.

이 선수는 한마디로 영혼이 맑고 아름답다. 꽁지머리를 뒤로 묶고 다니는 그의 모습을 보면 마치 중국 ‘삼합회’ 조직의 두목을 연상시킨다. 쏟아질듯한 그의 강력한 눈빛을 보면 주눅들기 십상이다.

            일본에서 열린 김일 책 출간회에 참석한 이왕표

그러나 그를 외모로 판단하면 오산이다. 그는 자상함이 그지없다. 고기를 구우면 먼저 먹는 법이 없다. 항상 구운 고기를 상대의 접시에 올려준다.

그와 얽힌 술 일화는 많다. 그는 말술도 마다 하지 않은 대단한 주량이다. 한창 그가 술을 마셨을 땐 소주 스무병이 기본이다. 또 맥주는 1만5000CC.

사실 그의 이런 주량도 스승 김일 선생에 비해선 반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주량에 대해 이렇게 말하곤 했다.

“술병 들고 다니긴 불편하지만 배에 넣고는 잘 다닌다.”

그의 말술은 한국프로레슬링계에서도 당할자 없다. 그는 찾아오는 사람 마다않고, 불러주는 사람 외면 않는다.

그는 자신을 불러주고 찾아주는 사람과는 반드시 인연의 정을 나눈다. 그리곤 술잔을 기울인다.

                 필자가 일본에서 출간한 김일 책

한번은 필자가 “형님 그렇게 사람을 다 만나면 건강 남아나겠습니까”라고 물었더니 “허허 아우님, 그렇다고 사람을 안만날 수 없지 않소”라며 털털 웃음을 짓곤 했다.

그와 실제로 술을 마셔보면 그는 주는 술 마다하지 않는다. 이런 말이 있다. 영웅호걸은 일찍 세상을 등진다. 아니면 나이들어 맛이 간다. 이는 남이 한잔 마시면 두잔 마셔야 하고, 두잔 마시면 네잔 마셔야 하기에 결국 나이들면 마신만큼 몸이 만신창된다.

상대가 따라준 술을 마시지 않으면 상대는 이런식으로 말한다. “내가 따라주는 술을 천하 이왕표가 거절하다니 기분 나쁘다” 그래서 이왕표는 주는 술 마다하지 않고 마셨다.

한때 일본 프로레슬러들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었던 그는 일본에서도 유명하다. 그와 함께 두차례 일본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그의 방문 소식을 어떻게 전해들었는지 전화벨이 쉼없다. 그가 일본 동경에 도착하면 어김없이 찾아가는 술집이 있다.

동경 아카사카 B술집이다. 일본 전 총리 뿐만 아니라 한국의 정재계 실력자들도 찾는다는 그 술집에는 다른 사람의 전용술은 없어도 이 선수 술만은 비치돼 있다. 일명 ‘이왕표 술’이다.

그는 원칙에 분명한 사람이다. 천하를 다 준다 하여도 ‘길이 아니면 가지 않고, 의가 아니면 행하지 않았다. 그의 전성기였던 80년대 후반 일본 프로레슬링계의 프로모터들이 일본에서 선수생활을 해줄 것을 제안하며 스카웃 제의 했었지만 거절했다. 그를 잡기 위해 백지수표까지 건냈지만 그는 한국프로레슬링계의 발전을 원해서 ‘노’ 했다.

임진출 전 의원이 김일 책 한국어 판 출판기념회에서 필자를 소개하고 있다. 임 전 의원 옆 이왕표

그는 남자의 표상이다. 느릿느릿한 말투 그러면서 또박또박 자신의 표현은 서스럼 없다. 그런 이 선수가 병실에서 암과 사투를 벌이는 모습을 보니 김일 선생이 누워있는 것 같았다. 김일 선생도 말년에 병마와 싸우면서 결국 2006년 10월26일 저세상으로 갔지 않았는가.

그날 이 선수를 면회한 자리에서 “형님 ‘김일 선생님이 왕포(김일 선생은 왕포라 불렀음)벌떡 일어나시라’합니다”고 말했더니 그는 눈시울을 붉혔다.

필자는 이 선수가 흘린 눈물의 의미를 안다. 그는 자나 깨나 한국프로레슬링의 중흥을 꿈궜다. 김일 선생이 이 선수를 자신의 후계자로 지목한 것은 그가 한국프로레슬링의 중흥을 이끌 적임자로 봤기 때문이다.

이 선수는 반드시 일어나야 한다. 일어나서 그가 김일 선생님께 약속했던 프로레슬링의 중흥을 위한 그 길을 가야 한다.

“왕표 형님! 김일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습니까.”

“왕포 벌떡 일어나소!”

암을 링위에 내동댕이 쳐서 다시 팬들앞에 모습을 나타내야 합니다.

슈퍼드래곤(이왕표 넥네임) 이왕표는 암을 이긴 승리자가 될 것임을 확신한다.

이 카페에 들어오신 분들도 그의 건강을 기원해주옵소서~~~~

필자와 함께 일본 동경을 방문한 이왕표와 김일 선생이 역도산 묘지앞에서 손을 맞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