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오랑! 그를 기억해야 한다
김오랑! 그를 기억해야 한다
  • JBC까
  • 승인 2017.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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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사 생도 시절 김오랑 중령

▲아내, 어머니 삼촌도 비명…일가족 '풍비박산'

12월13일 이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고 김오랑 중령이다. 누굴까. 요즘 사람들은 잘 모를 것 같은데 한국 현대사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으시면 “아! 그 분”하고 떠올릴 것이다.

지난 8년전 김오랑 중령의 명예회복을 위해 그의 고향인 경남 김해는 물론, 양산, 부산 영도까지 백방으로 취재다녔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김 중령은 1944년생이다. 고향은 경남 김해. 육사 25기. 육군대학교 수석 졸업. 특전사령관 비서실장. 육사 동기생중 선두주자였던 그가 79년 12월13일 새벽 신군부가 난사한 M16 총탄에 맞아 사망했다.

          가운데가 김오랑 중령

그가 지금까지 생존해 있었다면 어떤 인생이 됐을까. 전두환 전 대통령과 같은 경남 출신인데다 육사 후배였고, 강직한 군인이었기에 아마도 군 최고 자리까지 승승장구 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는 그러나 신군부의 하극상 반란 회유를 뿌리치고 자신의 상관이었던 정병주 특전사령관을 끝까지 지키다 신군부 총탄에 맞아 생을 마감했다.

김 중령의 비극적 죽음은 그 한 사람만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역사의 수레바퀴는 집안을 풍비박산시켰다.

                               김오랑 중령 묘비                                      

 남편의 묘비를 쓰다듬는 살아생전 아내 백영옥씨

▲무연고 납골당에 안치된 김오랑 부인 백영옥

부산광역시와 경남 양산시 경계 지점에 위치한 부산 영락공원 구 납골당. 지금도 안치 돼 있는지 확인이 안되지만 당시 이곳에는 한 여인의 유골이 안치돼 있었다.

‘이름 백영옥(여), 1948년생, 1991년 6월 부산 영도구 영선동에서 사망.’

김오랑 중령의 아내인 백 씨는 79년 12월 15일 남편이 13일 새벽에 사망했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듣고 일주일 내내 눈물로 지새우다가 실명(失明)하고 말았다. 그런 그녀가 91년 부산 영도의 한 허름한 주택가 난간에서 발을 헛디뎌 실족사한 것으로 돼 있다. 그녀의 사망에 대해 타살 의혹이 제기됐지만 죽은 자는 말이 없다.

당시 난 백 씨의 유골을 찾기 위해 이틀 내내 부산, 경남 일대 인근의 납골당들을 수소문해야 했다. 마침내 찾았던 무연고 납골당. 억장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당시 납골당 관리인 이명우 씨는 "무연고 납골당 철문은 설과 추석에만 연다"고 밝혔다. 이 때를 제외하고는 어느 누구도 들어갈 수 없다.

이 씨는 "백영옥의 유골은 연고자가 없어 조만간 정리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장사법에 따라 10년간 연고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납골이 자동 폐기된다.

따라서 백 씨도 장사법에 의거, 납골이 폐기될 것 같다는 것이 이 씨의 설명이다. 아마도 유골도 사라졌을 것이다.

역사의 수레바퀴에 깔린 한 여인의 죽음은 저승에서도 자리를 잡지고 못하고 구천을 떠돌고 있는 것이다.

                  영락공원

▲역사의 수레바퀴에 집안 풍비박산

1981년에는 비명에 간 막내아들의 이름을 애타게 부르던 김 중령의 어머니가 눈도 감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아들이 신군부 총탄에 맞아 사망한 후 특전사 부대 야산에 암매장됐으니 어머니의 심정이 오죽 찢어졌을까.

당시 동네 사람들은 어머니에 대해 "오랑이가 죽은 후 비통한 슬픔을 견디지 못해 넋을 잃은 채 살아갔었다"고 회고했다.

82년에는 조카를 잃은 슬픔을 견디지 못한 삼촌마저 저 세상으로 갔다. 나이 차이가 스무 살이어서 김 중령을 아들처럼 보살폈던 큰형은 화병 등으로 고통을 받다가 결국 암으로 사망했다.

마을 주민 이 모 씨는 "오랑이가 죽은 후 가족들까지 감시를 받았다. 전 재산을 날리는 등 그 집안의 비극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고 전했다.

'불의'에 저항했던 한 군인의 집안이 치렀던 비극적 대가였다.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의 눈물을 나라가 닦아줘야 한다. 국가가 위기에 처해있고, 국민의 생명이 위협 받을 때, 목숨을 바쳐 싸운 고귀한 희생과 헌신에 대한 명예로운 보답이어야 한다.

참군인의 길을 걷고자 했던 한 젊은 군인은 마땅한 역사의 평가마저 받지 못하고 있다.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 인사들이 광주 망월동 묘역에 정치권 인사들과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조국을 위해 목숨을 던졌던 김 중령의 묘소에는, 또 그의 아내 유골이 모셔져 있던 무연고 납골당에 그녀의 유골이 있는지 없는지 조차 모른다.

납골당 언덕에는 역사의 비참함을 아는 듯 모르는 듯 스산한 바람이 나무가지를 흔들고 있다.

허허! 이것이 2012년 12월 대선을 앞둔 대한민국 역사의 현실이다.

두분의 명복을 빈다. 이 방을 노크하는 모든 분들도 함께 명복을 빌어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