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도산 죽음 미스터리 -상-
역도산 죽음 미스터리 -상-
  • JBC까
  • 승인 2017.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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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로 일본 프로레슬링계의 전설적 영웅인 역도산(力道山·본명 김신락·사진) 사망 50주년을 맞았습니다. 일본 언론들은 앞다퉈 역도산을 재조명하고 있습니다. 1963년 당시 서른여덟 역도산은 왜 야쿠자 칼에 찔려 죽었을까요. 50년이 흘렀지만 그의 죽음 미스터리는 아직도 명쾌히 풀리지 않습니다. 필자는 지난 시절 역도산 죽음 미스터리 취재 수첩을 다시 끄집어 내어 그가 왜 죽었는지에 대해 집중조명할 것입니다. <필자주>

지난 주 일본을 다녀왔습니다.

일본에선 매년 12월15일이 다가오면 한 인물을 집중 조명합니다.

어김없이 한 사람의 영웅담이 오르내렸습니다.

15일이 무슨 날이냐고요.

15일은 재일한국인 역도산<사진>이 일본 야쿠자 칼에 찔려 죽은 날입니다.

15일로 일본 프로레슬링계의 전설적 영웅인 역도산(力道山·본명 김신락·사진)의 사망 50주년을 맞았습니다.

일본 언론들이 앞다퉈 특집기사를 게재하는 등 일본 열도가 추모 분위기에 빠져들었습니다.

도쿄신문은 ‘퇴색하지 않는 전후의 영웅’이란 기사에서 “당수치기로 외국인 레슬러를 차례차례 격파하는 모습은 전후 일본 대중들에게 꿈과 희망을 제공했다”고 회고했습니다.

아사히신문도 ‘불멸의 영웅’이란 기사에서 “영웅의 모습은 지금도 많은 사람들을 매료시키고 있다”고 칭송했습니다.

역도산은 1963년 12월8일 야쿠자 칼에 찔렸고, 일주일 뒤인 15일 사망했습니다.

16일 일본 고라쿠엔 홀에서 추도식이 열립니다.

이날 추도식 후 역도산의 손자인 모모타 지카라(32)가 프로 레슬러 데뷔전을 갖습니다. <위 오른쪽 사진>

사후 50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역도산은 일본에서 추앙받는 영웅입니다.

일본에서 사후 50년이 지났지만 이토록 추앙받는 영웅이 있었을까요.

2차 세계대전 후 가난과 전쟁의 폐허속의 일본에 희망을 안겨 주었던 사람이 바로 역도산이었습니다.

필자는 매년 12월 15이면 역도산 추억의 글을 적지만 국내 언론들의 무관심은 여전합니다.

한국과 일본이 역도산을 바라보는 시각이 그만큼 다르니 좀 안타깝다는 생각입니다.

‘가라데’ 한방으로 서구의 레슬러들을 때려 눕힌 역도산은 강인함 그 자체였습니다.

가라데를 날리는 역도산

1950년대 일본.

무엇보다 국민의 단합과 강인함이 요구됐던 시절, 역도산 등장은 패배주의에 젖었던 일본인들에게 “하면 된다”는 희망을 안겨줬습니다.

당시 일본 어린이들은 천황 이름은 몰라도 역도산 이름은 알았다는 사실만으로 역도산이 얼마나 일본서 유명했는지 알 수 있죠.

역도산은 함경남도 출생입니다.

14세 때 전국씨름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그런 역도산이 1939년 일본에 건너가 모모타[百田]로 개명하고, 1940년부터 역도산이라는 별명으로 스모를 시작했습니다.

일각에선 그가 조선어(한국어)를 사용하지 않았고, 스모를 했다는 전력만으로 친일파로 규정했습니다.

이를 두고 정말 무식하고 한심한 인간이란 소리를 듣는 것입니다.

역도산이 건너간 곳은 일본입니다.

일본에서 일본어를 사용했다는 이유가 친일파일까요.

당시 역도산은 15세 때 혈혈단신 일본으로 건너갔습니다.

지금 15세는 중학교 2학년생입니다.

그는 일본에서 스모를 했습니다.  

그 어린 소년 역도산이 일본으로 건너가 어떤 삶을 살았는가 한번쯤 내 동생 형이다 생각하고 떠올려 보십시요.

일본 땅에서의 고생은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그러니 친일이니 아니니 그따위 논란 부추기지 마세요.

스모했을 당시 역도산. 이십대 중반으로 추정된다

그는 조선인을 위한 삶을 살았습니다.

박치기 왕 김일 선생을 제자로 받아들였고,

재일한국인 여건부 선수와 고트네 선수도 키웠습니다.

1958년 동경 아시안 게임때 한국 선수 스폰서도 자처했습니다.

한국 최초의 복싱 세계챔피언 김기수와 재일 야구 영웅 장훈 선생도 후원했습니다.

역도산은 재일한국인들에게 꿈과 희망이었습니다.

역도산은 1963년 1월 한국에 와서 1964년 동경올림픽 지원도 약속했고, 한국의 체육발전을 위하여 서울에 스포츠센터의 건립도 약속습니다.

나아가 남북 통일을 위한 통일 전사를 자처했습니다.

그런 역도산이 사후 50년이 흘렀지만 일본은 추모열기, 한국은 무관심입니다.

역도산은 현재 일본 동경 니시마고메엔 혼몬지 (本門寺) 묘역에서 외롭게 잠들어 있습니다.

요즘 엔저로 일본 여행을 많이 갑니다.

2006년 3월 필자와 함께 역도산 묘지를 방문한 고 김일 선생과 후계자 이왕표

혹시라도 일본 여행 가시는 분들이 계신다면 한번 가보셨으면 합니다.

전철역에서 내리면 코앞입니다.

(동경의 한복판인 신바시에서 지하철 아사쿠사선을 타고 15분 정도가면 니시마고메역에 도착합니다. 니시마고메엔 혼몬지라는 큰 절이 있는데 그 절안의 묘지 한켠에 역도산의 무덤이 있습니다. 니시마고메 역에서 혼몬지 방향은 표지판으로 찾기가 쉽습니다)

저는 내일도 역도산 추모 글을 계속 이어 적을 겁니다.

역도산은 왜 야쿠자 칼에 찔려 죽었을까요.

저는 16일 오후 역도산을 칼로 찌른 일본 야쿠자 조직원 무라타 가쓰시(村田勝志) 얼굴을 최초로 공개할 예정입니다.

필자는 2006년 5월 역도산 죽음의 미스터리를 추적 취재 중이었습니다.

무라타를 인터뷰하지 않고서는 역도산 죽음에 대해 진실적 접근을 할 수 없었습니다.

수소문 끝에 그의 연락처를 알아냈습니다.

그는 일본 동경 롯번기 오야봉으로 건재를 과시했습니다.

그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는 필자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