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탄-'문재인도 모르는 조국의 사노맹', 노동해방운동의 총집결체
-6탄-'문재인도 모르는 조국의 사노맹', 노동해방운동의 총집결체
  • JBC까
  • 승인 2019.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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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노맹은 '남한 사회주의 노동자당'
사회주의의 기치를 대중화하는 것
사노맹을 알리는 집회 장면. 출처=네이버 이미지
사노맹을 알리는 집회 장면. 출처=네이버 이미지

조국 청와대 전 민정수석의 의혹과 비리가 차고 넘쳐나면서 정작, 국가체제를 전복시키려 했던 조국의 사노맹 관련설이 뒷전으로 밀린 형국이다. 이런 가운데 최근 사노맹 대표 였던 백태웅 하와이대 교수는 최근 한 좌파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서울의 뜨거운 열기가 계속 후끈하게 전해져 오는 것 같다”면서 “조국 교수 관련해 과거의 색깔론이 다시 나오는 것을 우려스럽게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백 교수는 “독재정권에 맞서 민주주의와 정의를 추구한 노력을 아직도 낡은 공안의 잣대로 재단하려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참 안타깝습니다”고 했다. 20일자 중앙일보는 ‘프라하에서 온 백태웅 하와이대 교수의 이메일’ 기사를 게재하면서 백 교수의 입장을 옹호했다. 80년대 한국의 운동권 세력들은 대한민국 역사와 정체성을 부정했다. 오늘날 이들은 대한민국 곳곳에 꽈리를 튼 후 한국 사회를 급진적으로 바꾸고 있다. 과연, 이들이 추진했던 국가체제 전복이, 청년 시절 몽상이었을까. JBC까는 28년 전 백태웅이 투고한 글을 입수 액면 그대로 게재한다.<편집자 주>

 

백태웅은 이 글을 통해 사노맹의 실체에 대해 처음 입을 열었다.

사노맹은 출범(1989년 11월)한 후 약 1년 5개월에 이르는 지금까지 많은 화제를 남겼다. ‘남한 최초의 공공연한 사회주의 조직' '1600여명의 조직원' '초현대식 장비’ ‘수많은 민주인사의 재정후원' 등 안기부가 공개한 사노맹의 실체는 하나하나가 사람들의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그 외에도 사노맹 관련 기사는 일간신문에 수시로 오르내린다. 계속된 탄압으로 90년 한 해 동안 구속된 동지들의 수는 수 십명에 이른다. 안기부의 사노맹 사건 발표가 범죄사실을 부각시키기 위해 자의적으로 편집된 것이긴 하지만, 우리는 그러한 방법을 통해서나마 사회주의자의 활동의 일단이 대중에게 공개되는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왜냐하면 미래사회에 대한 희망을 갈구해오던 대중에게는 그와 같은 단편적 정보도 달콤한 생명수 같이 느껴질 것이기 때문이다.

과거의 사회주의 조직들은 존재 자체를 아예 숨겨왔으며, 대부분 비밀주의로 활동해왔다. 통일혁명당이나 인민혁명이 그래왔고, 남민전이 그러하며, 전민노련·전민학련 역시 그렇다.

한 번에 우리 사노맹은 공공연하게 ‘출범'을 선언했고, 함께 투쟁하고자 한다. 조건이 허용하는 한 사노맹의 이름으로 대중 속에 모습을 드러내고자 한다. 사회주의의 기치를 대중화하는 것은 출발 초기부터 우리의 원칙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비합법 조직노선을 견지하고 있는 유일한 이유는 국가보안법이라는 시대각오지 유물이 사상의 자유를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국가보안법이 철폐되고 사상의 사유가 쟁취된다면, 우리는 즉시 대중 앞에 나아가 더욱 공공연히 활동할 것이다.

사노맹은 지난 89년 11월 12일 서울대 전노협 집회장에서 출범을 선언했다. 사노맹이라는 이름도 그때 최초로 공개화 되었다.

사노맹을 출범시키기 위해 우리는 참으로 오랜 기간 준비를 했다. 우리는 출범 1년 7개월 전인 88년 4월 경부터 '사노맹 준비위'를 결성하여 사상적·조직적·물적 준비를 진행했다.

우리는 그 기간 동안 '지옥훈련'과 '필수실천'을 사업의 두 가지 핵심부분으로 설정하면서, 조직 줄범의 기초를 마련했다.

그리고 사상의 자유가 아예 보장되지 않는 남한 사회에서 사회주의 조직을 지탱해낼 내적 토대를 갖추는 데 혼신의 힘을 다 쏟았다. 그러한 투쟁의 결실로 사노맹이 출범하게 된 것이다.

노동해방문학 정간조치와 관련, 노동해방 구호를 외치고 있다. 출처=구글
노동해방문학 정간조치와 관련, 노동해방 구호를 외치고 있다. 출처=구글

오늘날 안기부의 집중탄압에도 흔들리지 않고 버텨내는 힘도 그 시기에 축 적된 것이었다. 사노맹을 결성하기 전까지 우리는 ‘노동자계급 해방투쟁동맹' (노해동)에서 활동했다. 노해동은 '제헌의회(CA)그룹' 중앙이 체포된 후, 그 맥을 이은 핵심 활동가들이 모여 결성한 조직이다.

노해동은 기만적 개헌놀음에 맞서 민중의 의사를 대변하는 새로운 민주헌법의 제정을 주장 하고, 대통령선거 시기에 민중 독자후보 백기완 선생을 추대했으며, '민중의 정치세력화'를 위한 '민중의 당' 건설을 주도한 조직이다. 우리는 노해동에서 노동자계급의 해방과 민주주의 확대를 위해 헌신적으로 투쟁해왔다.

그러나 우리는 대통령선거와 국회의원선거에 대한 전술 에서 결정적인 입장 차이를 갖게 되었다. 그리하여 노동자 계급의 입장에 철저하지 못한 노해동에서 분리하여, 새로운 조직의 결성에 착수했다. 그것이 바로 사노맹이다.

사노맹은 그 어떤 조직과도 전혀 다른 새로운 양식의 전위 조직이다. 하지만 사노맹은 과거부터 연면히 계속되던 혁명운동의 흐름과 무관한 것이 아니고, 그에 뿌리를 두고 발전해온 조직이다. 
 

과거의 다양한 시도와 열사적 경험이 자양분이 되었기에 오늘날의 사노맹이 탄생하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사노맹을 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노맹과 여러 다른 정치조직들의 성과와 경험을 총체적으로 수렴하여 진정한 '노동자계급의 정당'을 만들고자 한다. '남한 사회주의 노동자당'은 지금까지의 노동해방운동의 총집결이며, 우리 운동 승리의 앞날을 담당하는 조직이 될 것이다. <계속>